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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품바축제

음성품바축제 사진

음성품바축제는,

우리고장 출신 최귀동 할아버지의 사랑과 나눔의 정서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품바는 단순히 각설이가 아니다. 적어도 음성군에서 개최하는 품바의 정의는 “사랑을 베푼 자만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란 인류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궁핍한 시대에 한 많은 구걸의 삶으로 생활하면서도 남을 먼저 배려하고 충족한 가슴으로 선행을 실행한 최귀동 할아버지는 오늘의 꽃동네를 이끌어 낸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자신도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동네를 돌며 밥을 얻어다가 구걸조차 하지 못하는 걸인들에게 먹인 그의 삶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숭고한 사랑의 화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음성품바축제는 그의 숭고한 인류애를 실천한 정신문화의 실체인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음성꽃동네는 오웅진 신부가 최귀동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 받아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장애인들을 모아 이룬 것이다. 음성품바는 최귀동이라는 걸인을 통해 탄생했다. 그의 사랑과 상생, 인류애가 깃든 음성품바축제는 사랑과 나눔을 근간으로 한 사랑축제이다.

‘세상을 사랑한 작은 예수’ 최귀동 할아버지

최귀동 할아버지는...

거지를 돕는 거지였다.
자기보다 남을 위해 사는 성인이었다. 밥을 얻어다가 자기만 먹는 게 아니고 움막 속에 동냥 못하는 사람들도 먹여 살렸다.

마음이 착한 거지였다.
어려서부터 심성이 착해 남에게 해꼬지 할 줄 몰랐다. 언제 이불을 줬는데 덥석 받아 들고 가더니 겨우내 덮고는 봄이 돼서 그 이불을 가져왔다. 그걸 주면서 할아버지는 이렇게 얘기했다. “잘 썼어. 다시 줄게 빨아서 써.”

염치를 아는 거지였다.
동냥 얻으러 왔을 때 마루로 올라오라고 하면 한사코 아니라며 그냥 마당에서 먹고 갔다.
그가 원하던 것은 돈이 아니었다. 오로지 밥이었다. 그는 ‘밥 좀 줘유!’가 아니라 항상 ‘먹다 남은 밥 없어?’ 였다.

이별의 아픔을 겪은 거지였다.
번성한 가문의 귀한 도령으로 자란 최귀동 할아버지는 결혼 적령기에 예쁜 아내를 맞아들였다. 그러나 일제 말엽, 할아버지는 일본군에게 강제 징용을 당하게 됐고 사랑하는 부모와 아내, 늘 함께했던 가족들과의 이별을 겪어야 했다.

징용으로 정신이상이 된 거지였다.
할아버지는 일본인에게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에 이어 고혈압, 동상까지 걸렸다.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거지였다.
아버지는 유지였고 어머니는 떡과 술을 파는 장사를 했다. 최귀동 할아버지네 5남매는 보통학교에도 다녔다. 큰 형은 나중에 웃동네에서 술집도 했고 둘째는 양복점을 했다. 그렇게 잘 살던 집안이 아편으로 망했다.

나보다는 남을 배려하고 정신질환을 앓으면서도 본능적으로 선행을 베풀며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한 할아버지의 삶의 행적들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사랑한 꽃동네의 작은 예수’ 최귀동 할아버지의 이해와 화해의 삶, 이타와 절제의 삶, 헌신과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준엄한 메시지를 만나게 된다.

(사)한국문인협회음성지부, 음성신문사 발간 「최귀동 할아버지의 일대기」 中, 2002년

주소 : 충북 음성군 음성읍 예술로 102 음성문화예술회관 별관 2층
대표전화 : 043-873-2241 팩스 : 043-873-2274 홈페이지 : http://pumba21.com 바로가기